보로부두르 사원과 족자카르타

갑자기 보로부두르 사원이 생각났다. 동남아시아를 떠나기 전에 어디든 한번 들러보고 싶어서 갑자기 비행기표를 사고 호텔을 예약하고 있던 약속을 다 취소하고 떠났다. 보로부두르 사원은 세계 7대 불가사의라고 하는 말만 들었지 무슨 종교의 사원인지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불가사의가 있으니 한번 가 보고 싶었다. 싱가포르에서는 바로 가는 비행기가 없어서 자카르타에 들려서 족자카르타 공항으로가는 연결편을 타게 되었다. 자카르타 공항은 매번 많이 붐빈다. 도착해서 도착 입국 비자를 구매했다. 이렇게 수속을 밟으면 인도네시아 국적자보다 더 빨리 통과하는 것도 가능하다. 시간을 돈으로 사는 것이다.

오래간만에 혼자 가는 여행이고 언제 또 다시 갈 수 있을지 몰라서 비용 걱정을 좀 접어두고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오려고 마음 먹었다. 보로부두르 사원은 인도네시아 자바섬 중앙에 있는 족자카르타 근교에 있다. 거기서 보는 일출이 좋다고 하여 갈 방법을 알아보니 족자카르타 시내에서 자면 아주아주 이른 시간에 일어나서 가는 투어에 참가해야 한다. 다른 방법은 사원 안에 있는 호텔에 묵는 것이다. 그래서, 사원내 호텔을 예약하고 그곳으로 향했다. 사원 내부에 있다보니 가격은 좀 하는 편이다. 호텔에서 공항픽업을 부탁해서 도착하니 어느덧 저녁시간이 되었다. 공항에서 나를 포함해서 탄 승객은 두세명 정도였다. 호텔은 1층으로 된 여러 동의 건물이 있고 정원도 나름 잘 가꿔 두었다.  도착하자 마자 자전거를 빌려서 사원을 한 바퀴 돌았다. 더 타고 싶었는데 비가 와서 가까운 곳만 돌아보고는 다시 호텔로 와야 했다. 아무도 없는 사원에서 경비하는 분들만 반갑게 인사를 해 준다.

저녁 식사를 하러 식당에 갔다. 몇몇 혼자 온 관광객들도 보였다. 일본사람 같았다. 성수기가 아니어서 그런지 투숙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어쩌면 호텔에서 식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없었을 수도 있다. 식사 중에 공연이 있었다. 민속 예술단 소속의 사람들이 나와서 전통악기로 연주를 하고 춤을 추는 공연이다. 동남아쪽에 가면 춤에서 손의 모양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부조에 있는 조각처럼 손날을 곧게 펴고 원을 만들고 손등을 최대한 위로 당겨서 손목의 각도를 유지하면서 춤을 춘다. 발의 움직임은 마치 바닥을 쓸고 다니는 것 처럼 움직이고 그리 크지 않은 키로 앉았다가 일어서면서 여러 형상을 만들어 낸다. 고개는 옆으로 약간 기울여서 정면을 보지 않고 살짝 기울여 쳐다본다. 사원에서 볼 수 있는 압살라 부조 형상과 많이 닮아 있다.

사원 안에 있는 호텔에 있다는 장점을 살려 밤에도 사원안을 돌아다녀 볼 수 있었다.  관광지다 보니 조명을 설치해 두었는데 인적이 없는 사원에서 조명을 받은 탑과 건축물을 보니 한국의 고궁 야간 투어가 생각났다.  사원 밖으로 나오면 조용하고 호젓한 안쪽과는 전혀 분위기가 다르다. 더위를 피해 밤에 나온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음식도 먹고 맥주도 마시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원 정문 옆 근처에 있는 꼬치구이집에 가서 꼬치를 몇개 사다가 맥주랑 같이 먹었다. 밤새 비가 왔는데 빗소리를 들으며 일찍 잤다. 어차피 다음날 아침에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보로부두르 사원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새벽에 일출을 보러 올라갔다. 다행히 비는 그쳤고 아침해가 뜨는 것도 볼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문제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래도 사원안에 있는 호텔에 묵었기 때문에 시내에 있는 사람들 보다 늦게 일어나도 괜찮았다.  족자카르타 시내에서는 보로부두르 일출 투어가 새벽 4시에 출발한다고 한다. 나는 다섯시 반 쯤 방을 나섰다. 호텔을 나와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사원 꼭대기까지 올라가게 된다. 아주 높은 것은 아니지만 그리 낮은 것도 아니다. 꼭대기까지 올라가면서 경사는 점차로 심해진다. 아직 날이 어두워 조각이 잘 보이지도 않으니 그냥 앞사람만 보고 올라가게 된다. 사원에 있는 파고다 안에 부처님 조각이 하나씩 들어있다. 지진 때문에 무너진 탑도 있고 훼손된 부처님 조각상도 있다. 그냥 돌덩이일 뿐인데도 왠지 일출을 받는 부처님 조각상에서는 뭔가 따뜻함이 느껴진다. 그래도 여기는 화산재에 덮여있다가 발굴된 것이라 그동안 풍화작용을 피해간 것이라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 

군데군데 머리가 없는 불상들이 있다. 이런 불상을 볼 때마다 잘라다가 골동품으로 파는 매장이 생각나 마음이 불편하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지아, 싱가포르 등 동남아 국가의 골동품 상에 가보면 불상 머리를 파는 것이 꽤 많다. 그걸 볼 때마다 목없는 불상이 생각나서 마음이 아프다. 이 동네 불상은 우리나라에서 보는 것과는 좀 다르게 생겼다. 우리나라 불상이 평면적이고 선 위주로 형상을 만들었다면 여기 불상은 좀 더 입체적이고 더 인도 사람과 비슷하게 생긴 것이 많다. 아마도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모델을 대상으로 만들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해가 다 뜨고 나서 너무 더워지기 전에 천천히 내려왔다. 올라갈 때는 일출을 보려고 빨리 올라갔지만 내려오는 길은 더 천천히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내려왔다. 부조로 만들어진 조각상에 여러 불경에 나오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하지만 내 눈에 더 띄었던 것은 배수처리를 해 놓은 것이었다. 아무래도 비가 많이오는 열대지방이다 보니 물을 어떻게 빼서 바닥으로 흘러 내리가 할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였을 것이고 배수를 위해서 물길을 내어둔 흔적이 잘 보였다. 전체가 돌로 만든 구조물이어서 물이 잘 빠지게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터인데 조형미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물길을 낸 것이 인상적이었다.

점심을 먹고나서 족자카르타 시내로 향했다. 가는길에 프람바난 사원을 들려서 낮 관광을 했다. 프람바난 사원은 힌두교 사원이다. 그래서 불교사원인 보로부두르와는 건축 양식이나 느낌이 많이 다르다. 힌두교의 최고신인 비슈뉴, 시바, 브라흐마와 관련 신화인 라마나야의 내용들이 돌벽에 부조로 새겨져 있고 탑이 높이 솟아 있다.  인도네시아는 화산대에 속해 있고 족자카르타 주변에도 화산이 많고, 지진도 많이 일어난다. 사원 주변을 보면 지진으로 무너진 돌더미들이 쌓여서 아직 복원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족자에서 잡은 숙소는 말리오보로 거리에 있는 이비스 호텔이다. 족자의 다운타운이라고 할 수 있고 거의 유일한 현대적인 몰과 바로 붙어 있다.  

왕궁 구경을 갔다. 목욕탕도 봤다. 저녁에는 프람바난 사원에 다시 갔다. 저녁 공연을 봐야 한다. 자리가 없어서 VIP석을 예약했다. 호텔까지 차가 데리러 오고 다시 데려다 준다. 프람바난 공연은 동남아시아의 대표적인 신화인 라마나야를 모티브로 구성한 내용이다. 이 이야기는 우리 나라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지만 인도/동남아 쪽에서는 그리스 신화처럼 여러가지 형태로 전승되는 내용으로 보인다. 딱히 대사같은 것은 없기 때문에 미리 내용을 어느정도 알아두고 가는 것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방법일 것 같다. 하지만 스토리 뿐 아니라 중간 중간 나오는 군무나 배우들의 연기는 매우 인상적이고 특히 마지막 전투 장면에서는 무대 전체에 진짜 불을 피우는 등 스케일이 있는 공연이어서 볼거리가 꽤 있다. 공연 중간에 비가 조금 왔지만 좌석마다 우산이 옆에 있어서 지나가는 비 정도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가 느끼기에는 로마의 카라칼라 목욕탕에서 하는 오페라보다 못할 것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카라칼라 목욕탕에서는 무대와의 거리가 멀어서 잘 안보이기도 했는데 프람바난 공연은 가까이에서 잘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밤이 되면서 날씨도 선선해지고 무대 뒤쪽으로 보이는 프람바난 사원은 조명을 받아서 특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오히려 옛날에는 조명이 없어서 밤의 사원을 잘 볼 수 없었을 텐데 그림처럼 솟아있는 탑과 공연이 잘 어우러져 있었다. 같은 공연을 족자카르타 도심에서도 하는데 우기가 아니라면 야외공연을 보는 것을 추천한다. 오랜 역사를 가진 스토리의 힘이 느껴지는 공연이었다.  

불어하는 친구들을 만나서 오는 길에 같이 왔다. 외국에서 만나는 불어하는 사람들은 생각외로 캐나다 사람들이 많다. 대학생인데 퀘백에서 왔다고 한다. 이제는 우리나라 학생들도 배낭여행을 많이 가긴 하지만 긴 여름 방학을 이용해서 여행 다니는 외국 학생들을 보면 아직도 부러움이 앞선다.

족자에는 갓자 마다(Gadjah Mada)라는 훌륭한 대학교가 있다. 인도네시아에 있는 유명한 학교중에 하나인데 공대로는 반둥에 있는 반둥 공과 대학이 제일 유명하지만 종합대학으로는 갓자마다 대학이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인도네시아 최고의 학교이다. 대학교의 이름은 마자파힛 왕조의 재상이었던 갓자 마다에서 따온 것이다. 의대를 포함해서 거의 대부분의 단과대학이 있고 캠퍼스도 평지에 아주 넓게 자리하고 있다. 버스에서 내려보면 인도네시아 전통 스타일의 큰 건물이 바로 눈에 띈다. 오렌지색 이중 지붕의 커다란 건물이 학교의 규모를 보여주고 있다. 

이 중에서 가보기로 한 곳은 기계&산업공학과(Department of Mechanical & Industrial Engineering) 였다. 건물은 거의 대부분 3층 정도이고 분위기는 공대스러운 옛스러움이 있다. 그러니까, 장식적이거나 예술적인 면은 거의 없이 기능적으로 꾸며져 있고 학생들은 주로 남학생들이 떼지어 다닌다. 우연히 기회가 닿아서 거기 있는 교수 한 분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학생들은 교복을 입고 다닌다. 하얀 셔츠에 남색 바지나 치마를 입고 다니는데 무슬림이다보니 긴팔 셔츠를 입는다. 인도네시아는 말레이지아에 비해서 좀 더 전통적인 무슬림이 많아서 팔다리를 내놓고 다니는 사람이 잘 없다.

오는 길에는 버스를 탔다. 고등학생이 옆자리에 앉았는데 보기 드물게 영어를 잘 했다. 똘똘하게 생겼다. 그런데 한국 사람은 처음 보는 눈치다. 어색해 하며 있길래 뭐하러 왔냐고 물었더니 의대 입시를 치르러 왔다고 한다. 자세히 다시 물어보니 인도네시아에서도 의사가 선호하는 직업중에 하나라고 한다. 시험은 잘 보았냐고 물었더니 자신없어 하길래 잘 될 거라고, 공부 열심히 해서 아픈사람 많이 고쳐주라고 하고 내렸다.

타만사리 라는 목욕탕과 박물관을 갔다. 엄청 덥다. 목욕탕은 구경을 하는 곳이라기 보다는 들어가야 하는데 구경만 하니 더 덥게 느껴졌다. 박물관에서는 팁을 주면 도슨트가 설명을 해 준다. 특히 오래된 유물일 수록 스토리가 없으면 별 감흥이 없는지라 따라다니면서 설명을 들었다. 하지만 별 감흥은 없었다. 이슬람 유물은 조각이나 회화가 없이 문양과 글씨밖에 없어서 다양한 재미는 좀 덜하다.  

호텔로 돌아와서 바로 옆에 있는 쇼핑몰에 갔다. 인도네시아는 카페루왁으로 잘 알려져 있다. 마침 커피를 파는 곳이 있어서 한잔 주문했다. 사실 커피맛은 잘 모르는 지라 이런 맛이구나 하는 느낌으로 커피를 마셨다. 보통 커피보다 한 단계 순화된듯한 맛이었다. 더이상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족자에서의 마지막 식사로 아얌 고렝 수하르티(Ayam Goreng Suharti)를 찾았다. 인도네시아는 무슬림 국가여서 소, 돼지등을 재료로 한 요리는 거의 찾을 수가 없고 따라서 닭요리가 많이 발달해 있다. 아얌(Ayam)이 닭 이고, 고렝 (Goreng)이 튀김(볶음) 이라는 뜻이 되겠다. 그러니까, 비슷하게 나시 고렝은 볶음 밥이 되고, 미 고랭은 볶음 국수가 된다. 이 식당은 족자카르타에서 시작한 체인으로 지금은 인도네시아 여러 곳에 지점을 두고 있다. 본점은 공항에 가는 길에 있어서 중간에 들려서 식사하기 적당하다. 주차장도 크고 잘 되어 있어서 단체 손님이 많이 오는 곳인 것 같아보였다. 

식당을 혼자 찾으면 별로 반겨 주질 않는다. 아무래도 2인 혹은 4인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서 한 명 분 음식만 시키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찾았던 시간은 점심 무렵이어서 유명한 식당이라 그런지 빈 자리는 별로 없다. 메뉴를 보고 주문을 하니 약간 헐벗은 닭 한마리가 나온다. 약간 헐벗었다 함은 살코기가 있어야 할 부분이 좀 쓸쓸하게 생긴 닭이 나왔다는 것이다. 닭 다리 부분이었던 것 같은데 뭔가 모르게 허전한 것이 살코기 부분을 떼내어서 다른 요리에 쓰는 듯 싶었다. 어쨌거나 튀김은 바삭하고 먹을만 했다. 뭐 한국에서 늘 볼 수 있는 프라이드 치킨과 별반 다를바 없어보기기도 했지만 코코넛 워터를 밑간에 넣어서 그런 것처럼 동남아 특유의 향이 있었다.  역시 인도네시아 답게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삼발 소스가 같이 나왔다. 삼발 소스는 인도네시아 식 고추장과 비슷한데 맵싸한 것이 우리나라 식재료에 써도 좋은 궁합을 보여줄 것 같은 소스이다. 삼발 소스를 이용한 볶음밥, 야채 볶음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 

식당 내부는 유명한 것에 비해서 잘 꾸며놓은 것은 아니었다. 타일 바닥에 약간 흔들거리는 식탁, 그리고 오래 앉아 있기는 조금 부담스러운 의자가 놓여 있다. 튀긴 음식을 팔다보니 식탁위를 닦기 편하게 펼처놓은 테이블 보에서도 약간의 끈적거림이 느껴졌다. 하지만 냉방도 잘 되는 편이고 서빙하는 분들도 친절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사진으로 가득 차 있다. 유명한 사람 - 주로 정치인 같아 보이는 - 이 방문했던 사진, 상장 등으로 덮여 있다. 다른 테이블은 주로 두세 가족이 같이 와서 이것 저것 주문에서 먹고 있다. 혼자 여행을 다니면 제일 아쉬운 것이 이런 것이다. 먹고 싶은 것은 많은데 주문을 여러개 할 방법이 없다.

인도네시아 음식은 우리나라에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사실 굉장히 유명하다. 식재료도 다양하고 적도근처 나라답게 여러가지 향신료도 잘 발달해 있다. 아마도 지역별로 유명한 요리들이 있을 테지만 이번에는 많이 접할 수 없어서 안타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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